*짧은 묵상 나눔 1447*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려면”
(요한복음 12:44~50)
44.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진짜 있는지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고, 믿을 만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를 얘기하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귀신(鬼神)의 존재는 믿고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똑같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믿을 만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도 없는 귀신의 존재는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공기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며, 바람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전기도, 가스(Gas)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에도 찬란하게 태양이 떠올라서 아침이 되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이 오직 자연의 이치(理致)일까요?
수많은 거대한 행성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일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우주를 순환하는 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일까요?
들에 핀 아름다운 많은 꽃들과 빽빽한 나무들.
하늘을 나는 수많은 새들과 들판을 뛰어다니는 그 많은 짐승들.
바닷속을 헤엄치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
그것들은 과연 어떻게 존재하게 된 걸까요?
사람들이 그것들을 만들었나요?
아니면, 처음부터 그냥 우연히 생겨난 것일까요?
사람들은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자기에게 뭐가 좋은지, 하나님을 믿으면 뭐가 이익인지를 따져보고 나서 믿을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 같은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수많은 이적(異蹟)을 행하신 주님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자기들에게 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해(害)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심지어는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주님의 이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서 구원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다른 증거(?)만을 요구하지요.
예수님을 믿는 게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을 보는 게 곧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곧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그것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봅니다.
밝은 태양과 맑은 공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좋으신 하나님,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고 믿을 수 있도록 많은 증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미라클30 – 오늘도 “30분 성경읽기”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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