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묵상 나눔 1441*
“돌을 옮겨 놓으라”
(요한복음 11:28~46)
38.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주님께서 비통한 심정으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무덤 앞에 모였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장례법은 우리네처럼 주로 매장(埋葬)을 했는데, 우리와 다른 것은 땅을 파고 묻는 게 아니라 동굴 속에 시신을 안치(安置)하고 굴의 입구를 바위나 돌로 막는 것이었습니다.
무덤 앞에 서신 주님은 그곳에 모인 무리를 바라보시며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굴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돌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의미합니다.
돌 이편에는 산 사람들이 있지만, 돌 저편에는 죽어서 나흘이나 지나 냄새가 나는 시체가 있습니다.
돌 이편에는 오늘과 내일이 있지만, 돌 저편에는 이미 나흘 전에 모든 것이 끝난 과거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굴을 가로막고 있는 돌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이기도 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돌을 옮겨 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절망이 희망으로, 과거가 다시 현재로, 죽음이 다시 삶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지금 그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일은 너무나 낯설고 그래서 거부감과 불신(不信)이 생깁니다.
마르다가 나서서 주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시신(屍身)에서 냄새까지 나는데 뭘 하려고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돌을 옮겨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원망 섞인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마르다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믿음과 불신”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합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으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죽음이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은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주님은 그 순종에 대한 보답으로 이적(異蹟)을 행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서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무덤 밖으로 나옵니다.
죽음을 넘어 삶으로, 어제에서 오늘로, 슬픔에서 환희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돌”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동굴 안 저 깊은 곳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마르다처럼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벌써 냄새가 난다”라고 불평하며 불신의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돌을 옮겨 놓으라”
주님과 함께 동굴 밖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어두운 동굴 안쪽에 머물도록 나를 가둬두고 있는 그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새겨듣고 절망과 불신, 근심과 걱정, 잘못된 모든 생각과 믿음 없음을 회개(悔改)하고 믿음으로 돌을 옮겨 놓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미라클30 – 오늘도 “30분 성경읽기”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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