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묵상 나눔 1155*
“두 주인”
(눅 16:1~13)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영국의 제25대와 28대 총리였던 ‘웰링턴 공작’에 관한 전기를 썼던 갓프레이 데이비스는 "나는 웰링턴 공작이 어떻게 돈을 썼는지를 보여주는 오래된 장부를 발견했다. 그것은 그의 편지나 연설문을 읽는 것보다 그가 실제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려주는 훨씬 좋은 단서가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돈에 관한 생각과 태도는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돈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주님도 돈이 하나님과 같은 높은 위치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돈이 실제로 그렇게 높은 권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돈을 그렇게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시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돈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집 하인이 자기 주인 말고도 다른 주인을 사랑하거나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사랑하거나 둘 다 섬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인에 대한 기만(欺瞞)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돈이 필요 없다거나, 악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서의 전체 내용 중 1/6이나 해당할 만큼 재물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돈은 필요의 대상이지, 사랑이나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한 우선순위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돈이 우리의 생각과 삶에 1순위가 되면, 그때부터 돈은 우리의 필요의 대상을 넘어 사랑과 섬김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돈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게 아니라, 돈이 우리의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시간과 삶을 다스리고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평생 마음 깊이 간직하고 살지 않으면, 어쩌면 우리의 신앙은 훗날 거짓으로 판명날지도 모릅니다.
목사이자 작가였던 조지 버트릭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두 개만 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돈이다. 모든 선택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거나, 다른 모습으로 위장되어 있더라도 이 두 가지 선택의 변형된 모습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
이는 공존(共存)할 수 없는 두 주인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혹시라도 지금 우리 마음속에 돈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 보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보다, 돈을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것은 아닙니까?!
혹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보다, 돈이 주는 기쁨이 훨씬 더 크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을 위해 쓰는 시간보다, 돈을 버는 데 쓰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것은 아닙니까?!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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